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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iahv 2020. 11. 21. 21:18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엔 초창기 컬러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꽤 두툼한 두께에, 위에는 흉물과도 같은 모양의 안테나까지 달려 있는 것이 작동을 하긴 할까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땐 최신형이라며 각광을 받았을 모델임을 난 잘 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급속도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을 뿐, 한 땐 이조차도 가지고파 안달을 냈던 이들이 꽤 됐을 것이다. 이보다 더 앞선 시대에는 컬러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겨졌을 것이다. 모든 화면은 흑백이었고, 그조차도 마을에 몇 대 없어,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이웃집을 기웃거려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방송은 조악했을 게 분명하다.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일이니 직접 경험을 했을 리는 없으나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조악함 안엔 열정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연예인이 모두의 우상이 되기 전이긴 했지만, 누군가를 우러러보는 순수한 팬심도 존재했을 것이고,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방송을 발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책 ‘흑백 텔레비전을 추억하다’는 나를 그 시절로 데려다 주었다. 나에게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이야기였지만, 나보다 조금 앞서 태어난 이들이라면 추억에 젖어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갈 순 없는 그 시절에는 ‘아씨’가 있었고 ‘쇼쇼쇼’가 있었다. 현재 모 종편 채널이 계승했다 주장은 하나, 당시로서는 가장 큰 인기를 구가했던 TBC 채널 또한 빼놓아서는 안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이 땅에는 있는 게 없었다. 모든 게 파괴된 폐허에 무언가가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방송 역사는 아시아에서 꽤 긴 편에 속한다. 최빈국이었음에도 방송이 가능했던 것은 황태영이란 인물과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KORCAD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라디오 방송 기자재의 구입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텔레비전 방송국을 설립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혼자만의 꿈이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나 톱니바퀴가 잘 맞아 돌아갔다. 표를 노린 정치인들이 정, 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앞장서 방송국 설립을 도왔다. 서로 다른 꿈을 꾸곤 있었으나 방향은 같았던 셈이다. 초창기 방송은 방송이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일단 방영되는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았으며, TV 수상기 자체의 배치가 드물어 시청하는 인구 또한 적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음에도 상품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던지 드라마도 만들고, 음악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열두 살 윤복희가 아버지를 따라 ‘OB파-티’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을 담은 사진은 묘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괴했던 건 녹화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기술적인 부족함으로 인해 방송은 무조건 생방송이었다. 지금이라면 엄연히 방송사고겠지만, 당시엔 없어진 배우를 찾는 목소리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카메라가 흔들리거나 아예 전원이 나가는 일이 발생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수익을 내는 건 꿈도 꾸지 못했기에 결국 KORCAD는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TBC는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인 KORCAD와 불의의 화재로 지부지 돼 버린 DBC에 이어 등장했다. 박정희 취임 원년인 1964년 개국했고, 박정희가 유명을 달리한 다음해인 1980년 강제로 문을 닫았으니 독재정권과 정확히 일치하는 기간 동안 존속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TBC는 분명 민영 방송이었고, 국영방송이었던 KBS에 비해 여러 모로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BC는 녹화 방영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했으며, 수많은 스타들의 등용문으로 활용되었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는 ‘쇼쇼쇼’와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후라이보이 곽규석’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순재, 오현경, 강부자 등 TBC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이들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7080문화의 첨병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세시봉 또한 TBC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다른 방송국은 경쟁 상대가 아니었을 정도로 TBC의 성장세는 놀라웠다. 얼토당토 않는 사이비 언론사에 시달릴 때면 1980년 있었다는 언론 통폐합을 떠올리고는 한다. 언론의 자유를 감안한다면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정권이 제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를 배제하고, 오로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언론사만을 상대하는 순간 정치는 썩는다. 1980년대는 정치가 스스로 썩기로 결심한 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만큼만을 남겨둔 채 모든 것은 없애버린 당시의 무지막지함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는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교묘하게 탄압을 하는 것이 오늘날의 방식이다. MBC의 변질, 종편의 난립 등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지, 이제는 오래 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TBC의 사례를 접하며 고민케 됐다.

흑백 텔레비전 그 아득한 시간 여행 속으로

한국 방송사에서 흑백 텔레비전 시대는 1980년 11월 30일로 끝이 났다. 방송통폐합에 의해 동양방송이 마지막 고별 방송을 끝으로 사라진 날이 11월 30일이며, 그 다음날 12월 1일부터 각 방송사는 컬러 방송을 송출한 것이다.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는 이 ‘사라진 방송사들’에 관한 기록과 추억을 한데 엮은 책이다. 흑백 텔레비전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물론이고 초창기 방송인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일구어낸 치열한 역사를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 흑백 텔레비전의 역사만을 다룬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또 방송의 역사만이 아니라 ‘시대상’도 그려본다는 점에서도 이 책이 갖고 있는 독특함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흑백 텔레비전 시절 한국 방송의 변화 과정을 정리하고, 1956~1961년대의 KORCAD(한국 최초 방송국), 1961년의 DBC, 1964~1980년까지의 TBC(동양방송)를 중점으로 주요 방송 프로그램과 인물, 그 시절의 방송 일화를 다루었다. 또한 방송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의 양상과 그 시대의 문화를 다루면서 동시에 저자의 추억을 곁들여,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듬뿍 맛볼 수 있다.

프롤로그 ‘테레비’가 생긴 날

1부한국 텔레비전 방송이 열리다

첫 장 KORCAD가 뿌린 소중한 씨앗
개척자 황태영 ∥ 우리 민족의 영광 ∥ 다시 써야 할 한국 방송사와 드라마사 ∥ 없는 게 없었다 ∥ 모든 방송은 생방송이었다 ∥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썼다 지우고……
둘째 장 DBC로 자라난 묘목
경영난 ∥ 과도기 ∥ 돌아온 최창봉 ∥ 화요극장과 TV 극회 ∥ 테레비천국 ∥ 1부 후기

2부흑백 테레비의 황금시대

첫 장 프롤로그
둘째 장 민간 TV의 진정한 출발(1964-1969)
TBC 개국을 축하한 KBS ∥ 녹화기와 전속제 ∥ 전투, 보난자, 도망자 ∥ 외화의 폭발적인 시청률 ∥ 장수무대와 노인의 기준 ∥ 돌풍의 비결 ∥ 쇼쇼쇼와 음악감상실 ‘세시봉’ ∥ 보세가공품 황금박쥐 ∥ 1960년대와 TBC
셋째 장 라디오와 TV를 따라잡다(1970-1974)
아씨가 연 1970년대 ∥ 일일연속극의 범람 ∥ 뉴스전망대와 TBC석간 ∥ 대학 문화와 방송 ∥ 여보 정선달의 실험 ∥ ‘신풍운동’의 유행이 방송계에도 ∥ MBC에게 일격을 당하다
넷째 장 TV 폭발의 시대(1975-1980)
장발 연예인 출입 금지 ∥ 추억의 만화 ∥ 추억의 외화 ∥ 주말연속극의 효시, 결혼행진곡 ∥ 정윤희 누나, 한진희 아저씨 ∥ ‘찰리 백’과 ‘찰리 정’ ∥ 10·26과 5·18, 그리고 야 곰례야 ∥ 이주일과 전두환, 청와대와 초원의 집 ∥ 코미디를 없애라 ∥ 뿌리 선풍 ∥ 테마드라마 ∥ 대망의 80년대를 맞이했지만
다섯째 장 마지막 전파(1980년 11월 30일)
마지막 장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