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쉽게 풀어 쓴 판소리 열두 바탕


제목에 쓰여 있는 바탕 이란 말, 낯설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당 은 익히 들어 알겠는데, 바탕 이란 무엇인가. 보통 이런 문제에 대한 시원한 답, 혹은 유권 해석 은, 그 책의 머리말에서 풀어(내려) 주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을 대신1)해서 내가 간단히 몇 마디 하자면, 바탕 이란 말은 그저 마당 과 같은 뜻이다. 너무 간단한가? 그러나 진실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당연히 한국인이니, 순우리말 어휘의 뜻이야 (사어나 준사어가 아닌 이상) 되새겨 보면 모를 리가 없다. 어떤가? 바탕과 마당은 같은 말 아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 판 은 또 어떤가. 이처럼, 인접 범주에 속한 단어들, 혹은 처음부터 동의어, 유의어 관계에 있는 낱말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어울리고 섞여서 쓰이는 거고, 이는 영어나 독어라고 해서 그 이치가 다르지 않다.판소리는 근세와 근대를 가르는 시기에 태동하여, 피지배계층, 서민의 정서와 의식이, 장엄하고 찬연하게 제 가치와 위상을 부르짖은, 자랑스러운 민족 문학이자 종합 예술이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용례대로, 개념 판소리 는 문학적인 대본만을 지칭할 수도 있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는 바와 같이 공연 예술 전체를 가리킬 때도 있다(책에 이런 말이 있는 것은 아님). 신기한 것은, 그 개념 각각의 술부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건 간에, 협의건 광의건 주어를 설사 상호 치환한다고 해도, 그 의미와 내용이 통한다는 점이다. 대본을 지칭함에도 공연에 대한 설명이 되고, 공연에 대한 서술을 그대로 텍스트에만 적용해도 그 유효성은 여전히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명확히 해명은 되지 않았으나, 바로 이 점이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우리 판소리만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이 책은 서두에 정병헌 (전) 교수의 해제가 실려 있고, 이어 여러 필자들(정 전 교수의 제자들)이, 전통의 판본을 두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편찬 취지를 그대로 믿자면, 보다 쉽게) 풀어 썼다는 12개의 대본이 실려 있다. 우선 서두에 대해서 논하자면, 사실 중고등학교 참고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 이상을 크게는 담고 있지 않아 실망한 면이 있다. 본디 쉽게 풀어 쓴 판소리 라 하면, 그저 본문의 단어나 통사 약간의 변형만 가하여 책에 싣는다고 그 미션이 완수되는 게 아니다. 일단 장르 전체에 대한 신선하면서도 명쾌한 해명으로 큰 프레임을 마련해 줘야 하고, 다음으로 개별 작품에 대한 총괄적 해설이 제시되어야 하며, 본문은 가급적 충실히 살리되 그 각주가 자세한 것이 정도의 방법론이다. 헌데 이 책의 한계라면, 그저 텍스트의 다소 변형에 그 힘씀이 그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는 기껏해야 대증요법적 접근에 지나지 않으며, 어느 레벨의 독자에게건 근본 수준의 만족을 주기는 힘들다. 다음으로, 별춘향전이나 심청가의 경우, 아니리, 자진모리 등등 각 문단의 진행이 그저 대사인지, 어느 곡조와 템포로 전개되는 가창인지를 그나마 표시해 주고 있는데, 다른 집필자가 담당한 부분은 그저 아무 표기도 없이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면 독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함과 동시에, 책의 편제 통일성을 기함에 있어 과연 진지한 고민과 수고가 있었는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민족혼의 그 정수와, 기저의 무의식이 동시에 담긴 이 판소리를 온리 텍스트 버전으로 접하면서(거듭 이야기하지만 보다 충실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새삼 시대를 초월하여 타당한 풍자와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부임 초장에 기생 점고부터 해 올리라는 변학도의 모습은 이 판본에서는 다소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본래 별춘향전은 이 화소를 품어 왔다), 제 자신이 임무에 불충한 현대판 탐관오리인 줄은 까맣게 망각하고, 본연의 소임에 어떤 지장이라도 줄 수 있을 인터넷 중독에 자신을 방치함은 엽색 행각의 폐단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줄로만 착각하는 행태이다. 국가의 녹을 먹는 자가 제 일은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면, 꼭 향이를 불러 주리를 틀어야만 악리 소리를 들어 마땅할까? 시공을 초월하여 자격 미달의 공무원은, 유비쿼터스하게 겨레의 주변을 멸종함 없이 맴돌게 마련인 듯. 1) 보통 이런 경우, 뻔뻔스럽게도 인용 표시 하나 없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면서, 마치 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평가를 리뷰에서 내리고 있는 듯한 어조와 형식으로 일종의 표절을 행하고 있는 작태를 흔히 본다. 이런 경우, 문단의 전후에,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가 아닌, 당해 책 내용의 일부임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면, 그건 일종의 표절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나 저자의 입장에서는, 리뷰어(그런 걸 리뷰라고 부를 수 있다면)가 어차피 제 책을 구매한 고객이고, 간접으로 상품의 홍보까지 해 주는 마당에 애써 제동을 걸 것 없다 생각해서 이를 방치하는 게 보통이나, 일반 소비자의 경우 리뷰어의 자질이나 나아가 책 자체의 품질에 대해서도 큰 착각을 하기에 이른다. 마치 휴대전화 보조금 경쟁의 악폐나 마찬가지로, 건전한 리뷰 문화의 정착을 위해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문학, 음악, 공연예술이 어우러진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판소리문학의 열두 바탕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한책이다. 여러 작품들 중 많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골라 각주 없이 최대한 쉽게 우리말로 옮겨 판소리의 재미와 감동, 시대정신과 삶의 본질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판소리 문학의 세계_정병헌
별춘향전_전상욱
심청가_김지연
흥부전_이유경
별주부전_김동건
적벽가전_이진오
변강쇠가_서유석
까토리가_최혜진
옹고집전_윤분희
배비정전_이태화
게우사_이경엽
강릉매화타령_이문성
숙영낭자전_김선현
북한의 판소리_한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