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나는 언제나 무질서, 혼돈, 파괴, 전복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함께 연상하게 된다. 아마도 격변의 시대를 겪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쿠데타”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싶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방편이나 수단으로는 도저히 바로 잡을 수 없는, 엄청나게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에 직면해서 그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취하는 최후의 수단이 쿠데타인 경우도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쿠데타의 기술』은 우리에게 “쿠데타”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사의 한 토막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 이면을 밝히는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내가 『쿠데타의 기술』을 읽으면서 크게 도움을 받은 측면이 있다면, ‘트로츠키라는 인물의 재발견’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쿠데타” 혹은 “혁명”이라고 하면 과거에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 혁명과 같이 부조리한 기존 질서(절대왕정)에 대한 항거 내지 불합리한 식민지 지배의 타파, 혹은더욱 최근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 볼셰비키 혁명)이 즉시 머리에 떠올라서 “체제 전복”과 연결시키기가 쉽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과거 군사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기존 체제가 군사적 물리력을 앞에 전복된 일을 많이 경험했으니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로츠키가 생각한 쿠데타 전술은 달랐다. 트로츠키는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퍼지는) “혼란”이 쿠데타에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p. 72). 그래서 트로츠키는 파업이나 물리력을 동원한 체제 전복보다는 사회 기간 시설(통신, 전력, 철도 등)을 점령하고 교란시켜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쿠데타의 성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외관상으로 보면 단지 일부 공공 서비스 기관들을 차지하는 데 불과한 것 같지만, 물리력(경찰력, 군사력)을 동원하여 정부 주요 시설(국회, 정부 청사, 법원)을 지키고 있는 측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결국 혼돈에 빠져 와해되게 된다. 한마디로, 트로츠키는 ‘정부 장악’보다 ‘공공 서비스 시설 장악’을 통한 쿠데타를 추구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트로츠키가 주장하는 쿠데타 전술은 레닌이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쿠데타 전술(다시 말해, 인간 역사는 부족 사회, 신석기 친족 사회, 동양적 전제주의, 고대 노예 사회,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의 일곱 단계의 역사 양식으로 발전하는데 각각의 상황에 맞는 쿠데타 전술을 동원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전술)보다는 대단히 단순하면서도 실행하기가 쉽다. 레닌이 주장하는 쿠데타 전술의 경우는 그 모든 상황에 딱 적합한 수단이 있어서 그 수단을 실행해야 하지만, 트로츠키가 주장하는 쿠데타 전술의 경우는 대단히 큰 보편성을 확보한다. 그래서 레닌의 쿠데타 전술은 사실상(어떻게 보면 운좋게)러시아 혁명이 (모든 조건이 딱 들어맞아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단한 위상을 갖게 된 것일 뿐, 다른 모든 상황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러시아 혁명이 발생할 당시 러시아의 사정이 여러 가지 요소가 딱 맞아떨어져서 성공했을 뿐, 레닌의 전술이 항상 쿠데타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트로츠키가 주장하는 쿠데타 전술도 어느 정도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는 하다. 트로츠키가 살았던 당시 사회의 기준에서는 트로츠키의 쿠데타 전술이 대단히 큰 보편성을 담보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실제로 최근에 발생하는 쿠데타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군사력 동원이나 물리력 행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결국 전술을 통한 쿠데타라기보다 실력 행사를 통한 쿠데타가 지배적이다.
물론 『쿠데타의 기술』에는 인간 역사에서 발생한 여러 쿠데타와 관련해서 더 많은 정보와 생생한 묘사와 치밀한 분석이 담겨 있다. 내가 이 서평을 쓰면서 트로츠키를 집중 조명한 까닭은 앞서 말한 대로 트로츠키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내세운 전제 조건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혁명이나 쿠데타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 머릿속에는 단순히 레닌이나 스탈린과 같은 인물만이 아니라 트로츠키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으면서 되새김질할 만한 작품이다. 굳이 쿠데타라는 거창한 용어가 아니라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두 세력이 서로 충돌하면서 서로에 대한 우위와 헤게모니를 점하려는 생생한 현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일독하도록 권하고 싶다.
쿠데타의 기술 은 권력을 빼앗고 지키는 다양한 사례와 방법들을 분석한 보고서이자 20세기 초 격동의 세기를 살았던 저자의 증언이다. 나폴레옹,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 등 세계를 뒤흔든 인물들을 통해, 말라파르테는 하나의 국가가 어떻게 탈취되고 방어되는지, 근현대의 쿠데타들에서 나타나는 법칙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옮긴이의 말
1948년판 서문 ─ 자유에 대한 방어가 ‘가져다줄 수 없는’ 것
1931년판 서문
제1장 볼셰비키 쿠데타와 트로츠키의 전술
제2장 실패한 쿠데타 ─ 트로츠키 대 스탈린
제3장 1920년: 폴란드의 경험, 바르샤바에는 질서가 군림한다
제4장 카프 대 마르크스
제5장 나폴레옹 ─ 최초의 근대적 쿠데타
제6장 프리모 데 리베라와 피우수트스키 ─ 궁정 신하와 사회주의자 장군
제7장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쿠데타
제8장 히틀러
맺는 말
|부록|
해제1 이탈리아 파시즘 약사
해제2 쿠르치오 말라파르테의 생애와 문학, 이탈리아 파시즘
해제3 인물 정보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