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하면서 종종 마주치는 문제는 내가 이 짓을 왜하나? 하는 자조적인 질문과 아주 가끔씩 부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허무감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이를테면 나도 블로깅이라면 으레공부가 하기 싫어 SNS에 매달리는 10대의 일탈과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저 남아 도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뻘짓 쯤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얘기다. 돼지우리와 진배없는 어두침침한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불빛을 마주한 채 웅크린 모습으로 자판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과히 아름다운 풍경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블로그를 하는가?하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면서도 도대체 나는 왜 사는가? 하고이따금 자신을 향해 의미도 없이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자신에게는 매일 복용량 처럼 매일 써야만 하는 글의 양이 있다며 자신을글쓰기에 미친 글쓰기광이라고 지칭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오래된 블로거들 대부분은 어떤 알 수 없는의무로 그들 자신을 속박하거나일정한 주기로 찾아 오는 조급함과 초조함에 얽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하다.날씨가 궂은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기상통처럼 말이다.그렇다고 내가 봐왔던 오래된 블로거들이 모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중 몇몇은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가려 뽑아이따금 자신의 책을 발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쩌면 블로그를 하는 보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글쓰기에 이렇다 할 재주도 없고뚜렷한 주제도 없이 잡다한 글만 올리는블로거에게는 언감생심 그마저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아무튼 그들의 책은 신춘문예와 같은 일정한 루트를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는 작가의책과 비교되기도하는데작가의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책은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생각하곤 한다. 예컨대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밝혀야만 하는 순간에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중견작가의 노련함에 비해 블로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쓴다는 데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순진하게도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블로그에 쓰는 글 중대부분이 자신의 경험과 직접적인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꾸미지 않고 기록한다는, 말하자면일기와 같은 특성이 일정 부분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집『일요일들』. 작위적이지만, 일요일 밤에『일요일들』을 읽는 것이 내 오래된 습관이다. 시시콜콜한 일상에 숨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유쾌하고 날카롭게 풀어내는 작가답게 이 소설은 쉽게 읽히고, 오늘의 안녕을 안심하게 만든다." (p.21)조안나의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는 순전히 제목이 좋아서 읽게 된 책이다. 나는 그녀가 대학생 때 시작한 블로그를 십 년째 운영하는 오래된 블로거라는 사실도, 결혼을 하기 전에는 출판사에서 근무했다는 사실도, 이십 대의 치기 어린 애독기를 담은『달빛책방』의 저자였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저자는 자신이 예전에 읽었거나 새로 읽은 소설200여 권 가운데서 이 책에 소개된 30권의 소설을 간추리는 데에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소비했다고 한다. 그 시간은 어쩌면 바쁜 직장인으로서의 눈으로만 읽는 독서에서 전업주부이자 전업작가로서의 감각이 살아 있는 독서로 탈바꿈하기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필수적인 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우화하는 과정에드는일정한시간처럼 말이다."유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도, 세련된 말투로 걸려온 전화에 응대하지 않아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미소를 짓지 않아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최신 맛집을 몰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시에 어울리는 차림을 하지 않아도 내 삶이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걸 밤마다 읽은 소설들이 가르쳐 주었다." (p.272~p.273)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 소설에 대한 국내 독자의 열기가 뜨겁다.교재, 수험서,자기계발서 등의 실용서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은 국내의 독서 생태에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낯선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은 곧 나 자신의 이야기이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며, 전 인류의 이야기로 확대되는 것이기에 한번쯤 소설에 빠져들었던 독자는 그 행복한 글감옥에서의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발적인 수감을 요구할런지도 모른다."결혼식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에야 비로소 책을 읽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 밀려왔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을 갖다 버리고 싶어질 만큼 절망적이었다." (p.260)월요일에 맞는현충일로 인한 짧은 연휴가 사람들의 표정을 바꿔 놓은 듯하다. 내일 당장 출근해야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을 그들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결 느긋해진 표정과 발걸음은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전염되는 듯 덩달아 미소가 번지게 된다. 이런 날 에쿠니 가오리나 박민규가 쓴 가벼운 소설 한 권 옆에 끼고 가까운 계곡에 나들이라도 나가보는 건 어떨까? 계곡에발을 담그고 소설을 읽는 재미에 한껏 빠져 보면 하루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소슬한 밤길을 달려 귀가하는 발걸음은 또 얼마나 가볍겠는가.
일상의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소설에서 만난 당신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삶의 여러 순간들 - 외롭거나, 무료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즐겁거나 - 에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이나 선배, 혹은 스승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다가와 독자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준다.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보지만 앞에 앉은 얌체족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독자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한 이야기 이지만 또한 전혀 뻔하지 않은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떠올리며 소소한 일상과 이를 이겨내는 인물들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바쁜 평일을 지나 한가롭지만 너무나 지루한 주말 동안 집에서 멍하니 있다가 불쑥 멋진 이성과의 불온한 상상이 찾아온다면 에쿠니 가오리의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로맨틱한 필드 워크가 도움이 될 것이다.
무늬만 대학생으로 사는 게 헛헛해지고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는 알베르 카뮈의 전락이 좋다. 매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 지쳐 누군가와 말도 섞기 싫은 날에는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가 제격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느끼는 감정의 기복에 따라 책에서는 맞춤형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나를 생각하게 하는 당신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 네드라에게 - 가벼운 나날 , 제임스 설터
인생에서 일요일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 일요일들 , 요시다 슈이치
그대는 언제까지 나를 혼자 둘 작정인가요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가장 가까운 듯 먼 한 여자에게 - 한 여자 , 아니 에르노
슬픔만 보여서 슬픔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 연인 , 마르그리트 뒤라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 자기 앞의 생 , 로맹 가리
내게 영감을 주는 당신
필드 워크 하러 나가는 거 어때요 - 한낮인데 어두운 방 , 에쿠니 가오리
고통이 없어, 고통을 만들어 냈던 당신에게 - 데미지 , 조세핀 하트
지금의 내가, 내가 알던 그 내가 맞던가 -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죽도록 사랑하는데 왜 용서할 수 없는 거죠 - 인생의 베일 , 서머셋 모옴
그가 멸시한 세계로 걸어 들어갈 때 -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사랑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 타인에게 말 걸기 , 은희경
나를 말하게 하는 당신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당신에게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당신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나요 -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고약한 농담을 지워 버리고 싶나요 - 농담 , 밀란 쿤데라
존경받을 만한 일상은 어디에나 있다 - 올리브 키터리지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나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요, 어쩌죠 - 전락 , 알베르 카뮈
당신은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은가요 -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내게 영원히 기억될 당신
불행은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당신은 어쩜, 그렇게 그대로인가요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행복한 패배자가 되고 싶어요 - 싱글맨 ,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
사람은 왜 아이를 낳을까요 - 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지금 당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답장 주실 거죠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 다니엘 글라타우어
누군가와 말도 섞기 싫은 날, 당신을 만나러 가지요 - 어느 작가의 오후 , 페터 한트케
나를 달뜨게 하는 당신
위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 템테이션 , 더글라스 케네디
주변의 사물들이 당신을 말해 주나요 - 사물들 , 조르주 페렉
당신 내가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 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꽃이 필요한 순간들을 기억하시나요 -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아직 슬퍼할 일은 많이 남아 있단다……. - 디어 라이프 , 앨리스 먼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 앨런 베넷
작가의 말 - 밤은 짧고, 소설은 길다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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