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 외
벼슬을 하찮게 여기고 학문으로는 정(鄭)나라 최고인 선비가 있다. 이름하여 북곽선생. 아름답지만 정절이 뛰어나 정려문까지 세워진 젊은 과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동리자. 하지만 그녀의 아들 다섯은 모두 성씨가 다르다. 으잉? 어느 날 밤, 동리자의 다섯 아들은 어머니의 방에서 나는 북곽선생의 목소리를 듣는다. 으잉? 이 밤에 동리자는 북곽 오빠에게시를 읊어달라 청하고, 북곽 오빠는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고 원앙을 노래한다. 이쯤 되면 선비인듯 선비같은 선비아닌 북곽 오빠와 열녀인듯 열녀같은 열녀아닌 리자의 본격 밀애 로맨스 드라마 정도가 되겠다. 요즘같은 때야 외로운 중년들이 만나 뜨거운 로맨스를 즐기는 게 예능 프로그램으로 정규 편성까지 되지만 어디 그때야 상상이나 할 일인가.(몰래 만나는 거야 당연히 그때도 있었겠지만) 아니나다를까 리자의 약간 모자란 다섯 아들은 북곽 선생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지어 성문 밖 여우가 둔갑하여 어머니를 홀리는 게 아닌가 짐작하고 때려잡으러 우루루 들이닥치는데(불효자들이다. 모른 척 좀 할 것이지.) 목숨을 건지기 위해 급히 달아나는 북곽 오빠. 그런데 달아나다 보니 누가 날 알아볼까 좀 걱정된다. 그래서 한쪽 다리를 목에 걸치는 등 숨겨왔던 요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다가 그만 똥이 가득 찬 거름통에 빠지고 만다. 리자의 아들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주위가 잠잠해지자 슬며시 빠져나오는 북곽 오빠의 앞에 나타난 것은 범. 호랑이. 전쟁, 마마와 같은 급의 위엄을 가진 산중의 왕. 전래동화 속에서는 곶감한테 후달리고 해와 달이 새로 탄생하는 데 한 몸 바치다 죽는 모자란 캐릭터지만, 이 <호질>에서는 원래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 그대로다.<위의 다큐는 일제시대, 양민들의 피해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조선 호랑이의 씨를 말려버린 정호군에 관한 이야기다. 명목상으로는 좋은 것 같지만 조선의 상징인 호랑이를 다 잡아 죽임으로써 조선인들의 정신도 함께 죽여버리려는 상징적 이벤트였던 것이다.>호랑이의 입을 통해 작가 연암 박지원은 북곽 오빠로 대표되는 당대 지배층의 허위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입으로는 사강 오륜을 말하지만 죄인이 넘쳐나는 세상, 술을 쳐마시고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인간, 약한 짐승들에게 잔인하게 굴고 먹고 사는데 급급해 남과 다투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제목 : 조선의 갑(甲) 양반. 당대 지배층의 위선적인 모습들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들이 누린 특권에 관한 요 짧은 다큐 한방이면 학생들의 공분을 쉽게 자아낼 수 있다. 범보다 효과적이다. 물론, 내가 설명하면서 양념을 좀 더 쳐야하지만>그렇게 거들먹거리던 북곽 오빠도 범 앞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똥을 줄줄 흘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아첨한다. 저 높은 곳에 있던 양반을 정말 바닥 모르게 추락시키고 있으니 박지원도 어지간히 당대 양반들의 꼴이 보기 싫었던가 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짧은 한문소설의 결정적 순간은, 범에게 납작 엎드려 있던 북곽 오빠의 모습을 지나가던 농부가 보고 "뭐하슈?(실제 대사는 선생님은 어째서 새벽부터 들에서 경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이지만)"하고 툭 물어보는 순간이다. 존경받는 선비가, 새벽에, 온몸에 똥을 묻히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데, 말이야 점잖게 나갔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병신이라고 비웃었을지. 단 한번이라도 양반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본 일이 있었다면, 아니 양반이 아닌 자기 신세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어찌 아니 웃을 수 있을 것인가! 고등학교 고전 문학에서 다루는 작품들 가운데 주요 인물에 대한 희화화를 통해 웃음과 비판 의식을 동시에 전달하기로는 이 소설만한 작품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재미 없지. 아이들에게 조별로 물었다. 북곽 오빠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 찾아보고 그 이유를 말해보자 했다.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최저시급은 챙겨준다 해놓고 지각했다고 마음대로 시급 까고, 수습기간이라고 시급 까는 치킨집과 편의점 사장님, 고졸 특채 시켜준다고 언론에 빵빵하게 홍보해놓고 2년 지나 자르는 한0그룹, 공약했던것 안 지키는 최고 권력자, 국회의원, 그리고 입학 전에 체육관이랑 기숙사 신축해준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안 해주는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까지.(얘들아... 누리과정... 예산...ㅜㅜ 교육청에서...ㅜㅜ 미안해.) 작품의 주요 내용과 유사한 것을 현실과 삶 속에서 찾아봤으니 이제 풍자의 구체적인 방법과 예를 알아볼 차례. 김지하의 <오적>을 부분으로 나누어 모둠별로 나누어 준다. 풍자의 대상을 찾고 국어 사전에서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 가면서 시인이 그 대상을 어떻게 요리하고 있는지 그림으로 요약하고 발표한다. 작년엔 제법 하던데 올해는 어떨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문학이라는 것이 우리 삶과 유리된 게 아니란 걸 이런 읽기와 활동들을 통해 느꼈으면 한다. 요즘 애들 말로 호랑이가 하는 말이 사이다 라며 교실 뒤편 시간표 국어 시간에 호랑이를 오려서 붙여 놨다. 다음 단원은 미스터 방. 또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기대된다.
조선 시대의 지배 계급인 양반의 허위 의식과 부패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양반전 , 거지 출신으로 일정한 직업은 없으나 핍박 받는 서민들 사이에서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광문의 이야기를 담은 광문자전 , 위선자인 북곽 선생을 범이 꾸짖는 이야기인 호질 , 전쟁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꿋꿋이 헤쳐 나가는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옥영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최척전 이 펼쳐집니다.
우리 겨레 좋은 고전은 원전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이한 시리즈입니다. 본문 뿐 아니라 글 뒤에 작품해설을 실어 고전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고전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좋은 글을 읽고 우리 문화와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호질]
-범을 섬기는 귀신들
-범이 먹고 싶은 고기
-가면을 쓴 북곽 선생과 동리자
-똥통에 빠진 북곽 선생
-인간을 향한 범의 호통
[양반전]
-오라를 받은 양반
-쌀 천 석으로 사고파는 양반
-양반 증서
[광문자전]
-거지 두목 광문
-빼빼의 죽음
[최척전]
-창틈으로 날아든 편지
-옥영의 자살 소동
-달빛을 타고 흐르는 피리 소리
-흩어진 가족들
-다시 만난 부부
-전쟁터에서 만난 아들
-중국인 사돈
-고국으로 가는 뱃길
-가족 상봉